자유게시판
영적인 삶
2018-09-01 14:35:53
이민욱
조회수 525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매일의 삶 속에서 자신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 영적예배입니다. 그런 영적 예배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사는 삶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공동체 안에서 섬기는 삶과 세상에서 사는 삶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먼저 교회공동체에서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1.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공동체
(1)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라
사도바울은 성도의 영적예배의 실제적인 삶에 대하여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나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3절). 사도는 자신이 받은바 은혜로 말미암아 권면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는 바울이 받은 사도직과 모든 은혜와 은사를 포함합니다. ‘너희 중 각 사람’은 로마에 있는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말합니다. 어느 로마교회의 특정한 사람만이 아닌 모든 성도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오늘날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적용됩니다. 여기서 ‘마땅히 생각할 바를 생각함’은 자기 자신의 처지나 조건에 맞는 생각을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의 처지를 고려하여 생각해야합니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것까지 생각하다보면 시험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아야’합니다. 자신의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품지 말고 생각의 한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해야’하는데,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은 하나님이 모든 신자들에게 빠짐없이 믿음을 주신 것을 의미하며, 각 사람이 모두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분량’이라는 표현은 믿음이 물질처럼 측정되는 양적인 것이라기보다 교회안에는 다양한 기능들이 있어 각자 주어진 직분과 은사의 한계와 특성에 따라 다르다는 뜻입니다(고전 12:4-31). 여기서 ‘믿음’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영적 은사의 성격을 알고 은사를 사용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로서의 믿음을 의미합니다.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말은 ‘분에 넘치는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건전하고 겸손한 생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분량대로 은사를 주셨으므로 각자의 직분과 역할이 다르며, 동시에 자신이 받지 아니한 직분의 영역은 침범해서는 안 됩니다.
(2)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교회공동체
성도가 믿음의 분량대로 각자에게 주어진 직분을 따라 섬기는 원리로서 먼저 생각하는 것은 교회공동체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공동체를 우리의 몸에 비유하며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다”고 말합니다(4-5절). 우리의 몸에는 여러 지체가 있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눈과 코와 입의 기능이 다르고 손과 발의 기능이 서로 다릅니다. 모든 지체는 특별한 기능들과 다양한 능력들을 지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이 많은 지체로 이루어져 유기적으로 움직이듯이 교회공동체도 성도 각사람이 모여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를 따라 서로 협력하여 유기적으로 움직여야합니다. '한 몸'이라는 표현은 통일성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룹니다(고전 12:27ff.). '한 몸'이란 인간의 혈통으로나 사람의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연합의 기반을 이루시고 믿는 자들이 믿음으로 그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엡 2:21).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연결된 그의 몸된 유기체는 오직 교회입니다. ‘서로 지체가 되었다’는 말은 각각의 성도가 교회 전체와 서로 관계를 가지므로 각 지체는 다른 모든 지체들에게 속한다는 뜻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이 없는 연합을 생각할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를 드러냄과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공동체는 한 몸으로서 통일성을 가지며, 각 지체들이 그 개성과 은사의 다양성을 갖고 움직이며, 여러 지체들이 상호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움직여야합니다.
2. 교회공동체를 섬기는 자들
(1)각각 다른 은사
교회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 봉사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릅니다.”(6절) 은사는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주어진 것으로, 어느 누구도 자기의 받은바 은사에 대해 자만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 안에서 성령의 역사(役事)하심에 따라 은사들이 주어지는 것은 각각 다른 기능과 직분을 유기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고전 12:7). ‘받은 은사’는 그 은혜가 구체적으로 몸의 지체들에게 반영되어 실제 행함으로 가시적으로 나타납니다. 성도들이 각각의 은사들을 받은 것은 이 은사들이 개별적으로 주어진 목적대로 사용되기 위해서 입니다. 교회에서의 특별한 직분이나 기능들은 서열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은사의 다양함과 그에 따른 능력들을 나타냅니다.
(2)은사로 주어진 교회의 직분들
교회공동체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은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사역과 그 외의 사역으로 나누어 설명됩니다. 즉 예언과 섬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말씀사역을 말하며, 권위와 구제와 다스리는 것과 긍휼을 베푸는 것은 말씀사역 이외의 교회를 섬기는 사역입니다.
‘예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언이 아닌 하나님 말씀을 전해주는 것을 말씀합니다. 아직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은 때였으므로 예언사역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는 주로 사도들을 중심으로 나타난 은사입니다. '예언'은 주로 선지자들에 의해 행해졌는데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기관이었고 계시의 내용은 여호와의 말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출 4:12;7:1, 2;렘 23:16, 18, 22, 28). 한편 성경의 기록이 끝난 시점에서 하나님의 계시는 완성되었고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는 사도들에게서 완성되었으며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완성된 이후에는 새로운 계시를 위한 예언자도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 예언은 경고와 권면, 교훈과 판단, 그 마음의 비밀을 나타내며(고전 14:3, 24, 25), 영감을 받아 하는 것으로 나옵니다(벧후 1:21). 예언을 시험하거나 고려해 봐야 할 때에는(고전 14:29)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와 그 척도를 두어야하며 이에서 벗어나면 무가치한 것이 됩니다. 즉 여기서의 예언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해석하여 백성을 가르치는 설교나 말씀 선포등과 연관되는 직분으로 봅니다. 예언은 ‘믿음의 분수대로’ 행하여야하는데, 이것은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가 믿음에 따라 증거하며, 그 말씀이 반드시 성령의 역사에 의해 능력으로 나타날 것을 믿고 전함을 의미합니다.
'섬기는 일'은 매우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의 헬라어 '디아코니아'는 종종 비신자에게 말씀을 전하는 직분과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행 6:4). 그러나 본 구절의 '섬기는 일'은 그 행사에 있어서 의도적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 필요한 '집사의 직분'(엡 4:12)에 제한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은사가 예언과 가르침 사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섬기는 일'이란 신자의 물질적 요구를 관장하는 보다 좁은 의미의 봉사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는 말씀사역자를 돕는 평신도 지도자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섬기는 일’은 '믿음의 분수대로'의 원리에 적용하여 실제적으로 섬김의 은사를 받은 자들은 마음을 다하여 그 직분을 충실히 이행해야 합니다(벧전 4:11).
‘가르치는 자’는 예언하는 것과 구별되며 섬기는 것과도 다릅니다. 예언은 계시와 관계되어 있는 반면에 가르침은 지식과 관련하여 지혜와 지식의 말씀으로써(고전 12:8; 14:6) 하나님의 계획을 조화롭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진리의 말씀으로 교회를 형성케 하고 훈계를 통해(15:4; 딤전 4:13; 딤후 3:16) 성도들의 삶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가르침입니다. 로마서도 그런 목적으로 진리의 해석인 교리 교육을 기초로 하여(1-11장) 성도들의 실제적인 삶을(12-16장)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로 섬겨야하는데 아울러 자기 믿음의 분수(분량)대로 그 임무를 수행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에 있어서는 사사로이 풀거나 억지로 해석하지 말며 성령의 도움을 받아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벧후 1:20, 21;3:16).
‘권위하는 것’은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과 다른 말로서 형제를 위로하고 권면한다는 뜻입니다(행15:31;딤전 4:13). '가르치는 자'는 복음 진리를 선포하는 반면 '권위하는 자'는 진리를 들은 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 속에서 복음에 순종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마음과 의지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권위하는 자는 권위 받을 일을 당한 자의 상황을 지혜롭게 파악하고 권위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과 소명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하듯이 해야 합니다(엡 6:6)
구제는 교회의 재물을 공적으로 재분배하는 것이나, 개인의 재산을 나눠주는 것이나, 어떤 형식을 취해 구제를 하든지 다만 구제의 원리를 따라, 즉 성실함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성실함'은 감추어진 목적이나 뜻이 없는 순수한 마음을 말하며(행 5:2) 동시에 관대한 마음으로 후히 주는 것을 일컫습니다(고후 8:2;9:11, 13).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해야합니다. '‘다스리는 것’은 성경에서 주로 교회에서 다스리는 것과(살전 5:12;딤전 5:17) 가정에서 다스리는 것을 나타냅니다(딤전 3:4, 5, 12). 여기서는 교회에서 교인들을 지도하고 통솔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에 대한 표현입니다. '부지런함'은 대체로 ‘종교적인 열심’을 뜻합니다. ‘다스리는 자’는 맡겨진 일에 열의를 가지고 세월을 아끼며 충성해야 합니다(고전 4:2;엡 5:15-17). 바울은 부지런함을 잘 실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주신 직분을 확신하여 열심을 품고 복음을 전파했으며 충성을 다했습니다. 사도가 여기서 '다스리는 자'의 은사를 받은 자에게 '부지런함으로'라는 단서를 첨가한 것은 다스리는 직무를 봉사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내세우는 방편으로 사용하는 경향을 경계하면서 근면에게 직무 수행에 임할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행 29:17-24; 딤전 1:12).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해야합니다. 본절의 '긍휼'은 일반적 의미의 '긍휼'로서, 병든 자와 환난 중에 있는 자, 무력한 자, 노인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즐거움으로’하라는 것은 고통받는 곳에 도움을 주며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어두운 곳에 즐거움으로 나아가는 그들은 위로와 용기를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궂은일이란 마지못하여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소극적인 자세가 아닌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자세로 직무를 수행하도록 촉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즐거움으로 긍휼을 베풀라는 말씀은 성도들의 공동체가 한 몸인 것을 강하게 부각시킨 말입니다.
3. 교회공동체의 섬기는 자들의 자세
(1) 사랑으로 섬기라
교회공동체를 섬기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자세는 먼저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엔 거짓이 없어야합니다.”(9절) ‘사랑’('아가페')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냅니다(5:5, 8; 8:35, 39; 15:30). 그러므로 사랑은 꾸밈없이 진실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는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적극적으로 악을 미워하고 선한 것에 연합하라는 권고입니다. 이는 결정이 요구되는 삶의 길목 길목에서 확실하게 선을 택하는 생활 원리를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에 속하기 위해 악은 그 모양이라도 미워하고 버리는 태도가 필요합니다(살전 5:22).
그래서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먼저 해야”합니다(10절). '형제를 사랑하여'는 형제 자매간의 사랑을 나타내며, '우애하고'는 혈육(血肉)간에 주고받는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들로 이뤄진 가족으로 그 공동체 안에서 가족간에 느끼는 지극한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마12:46-50;갈 4:5;엡 3:17). 여기서 사도는 그 사랑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가족에 속한 성도들간의 관계에서 표현되기를 요구한 것입니다.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는 것’은 상대방을 인정해 주고 높이 평가해 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서로 먼저 존경할 수 있는 이유는 상대방의 개인적 인격이나 능력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셔서 그리스도의 크신 구속의 은혜를 입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는데 있습니다. 그리하여 함께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아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사는 거룩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인 것을 생각할 때 그 형제의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떠나서 진실하게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우러러 나는 것입니다.
(2)부지런하여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교회공동체를 섬길 때 요구되는 두 번째 자세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것”입니다(11절). 보통 성도들은 처음 믿을 때에는 매우 열심이다가도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게 되면 주를 향한 처음 사랑을 잃고 영적인 타성에 빠져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진정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된 삶은 게으르거나 나태할 여유가 없습니다. ‘열심을 품고’는 '성령과 함께 하는 열심을 품고'라는 의미입니다. 주를 섬기기 위한 열심은 성령의 감화가 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공동체를 섬기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것이므로 주를 섬기는 것입니다. ‘주를 섬기라’는 ‘주께 섬김을 다하라’의 의미가 됩니다. 성도들은 주님의 종으로서 충성을 다해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3)소망중에 즐거워하라
교회공동체를 섬길 때 세 번째 자세는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는 것” 입니다(12절). ‘소망’은 종말에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면서 그 영광의 들어갈 것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죄의 형벌 아래에서 인간은 참된 소망도 즐거움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소망만이 참된 즐거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영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소망의 근거이며 근본이 되시므로 영원한 즐거움을 주시는 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환난 중에 참으며’ 나아갑니다. 환난은 모든 인간이 당하지만 특히 성도에게는 복음으로 인한 환난이 있습니다. ‘참으며’는 단순한 인내보다는 소망을 바라보고 참는다는 의미로서 종말에 취할 것을 확신하며 참는 것입니다. 환난 중에 참고 견디는 힘을 공급받는 길은 ‘기도에 항상 힘쓰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항상 힘쓰며'는 '전심전력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하나님께 기도에 항상 힘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4)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교회공동체를 섬길 때 네 번째 자세는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는 것”입니다(13절). 성도들은 로마에 있거나 예루살렘에 있거나(15:25)를 막론하고 곳곳에 흩어져 있는 모든 신자들을 일컫습니다. ‘공급하며’는 성도들에게 서로 어려운 성도의 필요와 궁핍을 도와줄 뿐 아니라, 어려움에 함께 동참하라는 권면입니다. 당시의 로마 제국은 식민지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고 토지를 몰수하는 등 많은 재정적인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귀족층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따라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거기다 성도들은 신앙에 대한 박해도 감수해야 하는 형편이었으므로 성도간의 곤경을 도우며 동참하는 것은 서로에게 용기를 주며 위안과 격려가 되는 것입니다. ‘손 대접’은 '손님이나 이방인, 즉 나그네를 사랑하는 것'으로 손님을 환대함을 일컫습니다. 애굽에서 '객'으로 있었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과거 역사를 생각하면서 '손 대접'하기를 강조하곤 했습니다. 또한 초대 교회 당시 성도들에 대한 핍박이 심했으므로 이곳저곳 나그네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여행하는 자들과 핍박으로 도망하는 자들, 돈 때문에 심부름 다니는 자들은 곳곳에서 신자들에게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성도들은 한 가족이면서(10절) 모두 나그네이므로(히 11:13), 서로를 손님으로 여기고 합심하여 서로를 돌본 것입니다. ‘힘쓰라’는 말은 '노력하다'를 뜻으로서 여기서는 계속적으로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는 권면입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영적으로 사는 자는 주님의 몸된 교회공동체를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받은바 은사대로 섬기되 사랑으로 섬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대로 사랑으로 섬기면서 상대방을 존경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으로 알고 열심히 섬깁시다. 그리고 주님의 날에 주님으로부터 받을 상을 바라며 즐거운 마음으로 섬깁시다. 부지중에 나그네를 대접했다가 천사를 대접했던 아브라함처럼 나그네 대접하기를 힘쓰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영적인 삶의 실제입니다
[출처] 롬12장 3-13 영적인 삶의 실제(1) 교회공동체를 섬기는 삶 -김동휘 |작성자 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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